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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이야기

선사시대

고대사회(古代社會)의 성립

선사시대先史時代는 아직 문자가 발명되지 않아 역사기록이 없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는 인류가 남긴 유적과 유물을 토대로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고고학考古學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복원 해석된다.
광복 이후 고고학 방법에 의한 발굴 연구가 1960년대에 이루어지고, 영광지역에서는 1973년에 백수일대의 고인돌이 처음으로 발굴 소개되었다. 이후 고인돌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1990년대 이후 각 시기에 걸친 집자리와 무덤, 유적들로 확대되어 이제 영광지역의 선사문화를 일정 복원하는 성과를 거두어 선사시대가 포함된 영광의 온전한 역사과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원시사회原始社會는 어느 특정한 지역과 관계없이 모든 종족의 보편적인 단계에 해당한다. 영광에서도 인류 최초의 문화인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원당·마전·군동 유적을 비롯하여 현재 12개소가 조사 보고되어 이 지역에서 중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구석기인들이 살았음이 확인되었다.
이들이 살았던 시기는 대체로 4만 5천~1만 5천년 전으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집자리가 생활근거지 주변인 강가에 분포되어 있으며, 뗀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고 채집경제를 영위하면서 가족 단위의 무리사회(群社會)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염산·낙월면의 섬지역에서 패총貝塚 3개소가 발굴되어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물론 영광에서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매우 빈약하지만 앞으로의 발굴조사에 따라서는 내륙의 해안가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많아 주목된다. 이들 신석기들은 간석기(磨製石器)와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고, 농경 정착의 움집(竪穴住居) 생활을 계기로 혈연관계가 보다 확산된 씨족氏族 단위의 부족사회部族社會로 발전하게 된다. 영광의 청동기시대의 유적은 143개소로서 가장 많이 발굴 조사되었다.

고인돌은 134개 지역에 712기로서 주로 받침돌 4개가 고인 기반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읍면 곳곳에서 발굴될 정도로 청동기문화가 영광 전역全域에 확산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인돌은 백수·홍농읍과 대마면, 불갑면, 묘량면, 군서면, 군남면 일대에 밀집 분포되어 있으며, 마전·군동 유적에서는 금강이나 영산강유역과 동일한 문화권의 주거지가 발굴조사 되었다.
이들 영광의 청동기인들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기원전 10~5세기에 살았으며, 청동검과 민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이 시기에는 비약적인 농업생산력의 발전으로 계층·계급 분화가 진전되고, 최초의 정치사회인 군장국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바로 고인돌의 주인공은 그 축조 운반이나 군집 현상으로 보아 권력의 소유자였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B.C. 4세기 무렵 후기 청동기문화 위에 철기문화鐵器文化가 보편화되면서 종래의 군장국가는 연맹왕국 단계로 발전하여 고대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적과 생활

영광지역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적은 총 12개소인데, 이 중 대마면 원흥리 원당·마전·군동유적이 발굴조사 되었다. 이는 영산강과 서해안지역의 저평한 구릉지대에서 최근 많은 구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된 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구석기시대의 특징 유물인 뗀석기는 지표상에서 발견되기는 쉽지 않다. 지층이 삭토되거나 자연 유실되었을 때 발견된 경우가 많고, 원래는 지표면 하에서 발견되기도 하지만 깊게는 수m 아래에서 발견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영광지역에 많은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마전유적의 뗀석기는 갱신세 토양 중 2개의 지층에서 발견되었다.
윗 문화층의 석기는 주로 석영맥암 자갈로 만들어졌으며, 층위로 볼 때 후기구석기시대에 해당된다. 아래 문화층의 석기는 매우 적으나 층위 상중기구석기시대로 추정되어 중요하다.
원당과 군동 유적의 구석기는 주로 석영맥암으로 제작된 것들로써, 석기 제작 방법을 알려주는 몸돌과 격지, 망치돌이 있으며, 사냥돌과 톱니날, 긁개, 홈날 등이 있다. 문화층이 상부와 하부 토양쐐기 사이에 존재하며, 석기의 제작기법으로 직접떼기가 쓰였고, 석기 갖춤새로 보아 중기구석기시대로 생각된다.

마전·군동·원당유적에서 확인된 구석기유적은, 영광지역의 구석기인들이 중기구석기시대부터 후기구석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살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영광지역의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시기는 전남지방에서 측정된 절대연대로 보아 대략 4만 5천 년 부터 1만 5천 년 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영광의 구석기인들은 유적들이 발견된 지형으로 보아 나지막한 구릉상에 생활의터전을 잡고 살았다. 그들의 생활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 밝혀진 것들과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굴에서 생활하거나 인위적으로 집을 짓고 생활했다. 집자리는 대부분 생활근거지 주변인 강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유적의 문화층이 강가 퇴적층위에 형성되어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집자리의 구조는 대개 바닥이 타원형이나 장방형으로 파여 있고 원뿔 모양의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광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3개소인데, 유물산포지 1곳과 조개무지 2곳이다. 염산면 오동리 연화유적, 낙월면 상낙월리 조개무지, 낙월면 송이도 조개무지가 있다. 조사된 유적들 중에는 빗살무늬토기가 확인되고 있어 그동안 공백기로 남아있었던 이 시기문화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오동리 연화유적은 마을의 동쪽 산의 능선부에 위치한다. 유물은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계통의 점열문, 사선문이 새겨진 토기조각이 수습되었다. 상낙월리 조개무지유적은 낙월도 선착장 뒤의 작은 구릉으로부터 연결되는 패각층의 흔적이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져 있었으나, 경작으로 인하여 파괴되었다. 조개무지의 규모는 길이 50×10m이다. 패각층의 두 께는 1.5m 정도이고, 빗살무늬토기편 2점이 확인되었다. 송이리 조개무지유적은 송이리 대촌마을에서 북쪽 해안도로를 따라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의 곡간 대지상에서 패각층이 확인되었는데, 빗살무늬토기 구연부(입술부분), 동체부(몸통부분), 저부(바닥부분)편 등 8점이 수습되었다.

영광에서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주로 도서지역에서 발견되지만 내륙의 해안변에서도 발견될 소지가 많다. 신석기시대 대표적인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는 서해안지역을 따라 나타나는 조개더미유적들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철저한 조사를 한다면 더 많은 유적이 발견될 것이고, 내륙의 저평한 구릉지역에서도 집자리와 같은 유적이 발견될 것이다. 현재 발견된 조개무지유적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영광지역의 신석기시대 문화를 밝힐 필요가 있다.

청동기시대의 사회는 국가 형성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사회에서 점차 지배층이 등장하는 계급계층사회로 변화되어 가면서 역사상의 마한 소국들이 각 지역에서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영광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집자리와 고인돌을 들 수 있다.

집자리가 확인된 곳은 영광 마전유적과 군동유적이다. 영광에서 발굴된 집자리는 금강이나 영산강유역에서 나타나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의 형태나 출토 유물 측면에서 보면 같은 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영광지방에 분포된 고인돌은 114개 군집지역에 512기이나 유실된 고인돌을 포함하면 원래 134곳에 663기가 분포되어 있었다.

영광군 고인돌의 특징은 탁자식고인돌과 기둥모양의 고인돌柱形支石을 한 기반식 고인돌을 들 수 있다.
탁자식 고인돌은 모두 5기인데, 군남면 설매리 동고, 불갑 쌍운리 회복, 백수 죽산리 명산, 묘량 삼학리 왕촌, 묘량 삼효리 석전 등이다. 이 탁자식 고인돌은 덮개돌 밑에 판돌板石로 된 길이 150cm 내외의 무덤방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형태이다. 영광에서 발견된 기반식 고인돌은 괴석塊石형 덮개돌 밑에 자연석으로 고인 것과 사각형으로 다듬은 장주석을 세워 고인 것이 있다. 앞의 고인돌은 받침돌이 4~6개이나 기본은 4개이다. 이 형식은 백수 길용리 용암·천마리 금자동, 홍농 단덕리 마래·가곡리 가학·진덕리 서당, 군남 반안리 대안·동월리 매화·남창리 석암·용암리 조양·대덕리 흥곡, 불갑 가오리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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