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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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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낮에도 해저물녁처럼 울울창창 초록이 짙다
작성자 한결가족 작성일 2004-04-29
영광불갑산

'밤으로 가는 산'.
한결아빠가 붙인 이름이다. 아주 맑은 날인데도 수림이 울창하여 해 넘어갈 무렵처럼 산행길이 어두운 까닭. 불교의 도래지란 의미의 불(佛)과 육갑의 갑(甲)자를 딴 불갑사가 있는 산. 산책길, 푸근한 흙길, 급경사 오르막길, 위험한 암봉길 등으로 여러 가지 맛을 보게 하는 산.

가볍다. 정말 모처럼 부부가 단 둘이서 손을 잡고 나선 산행. 결이가 어제 장흥 외가에서 자겠노라고 남은 덕에 얻는 여유로움(?)이다. 결이에게는 쬐끔 미안하지만 마음의 부담이 전혀 없는 데다 날씨마저 아침부터 '화알짝'이고 산들바람까지 곁들이니 금상첨화.

여러 갈래의 길 중, 불갑사에서 해불암을 거쳐 올라가 장군봉을 지나 불갑사 뒤쪽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한다. 지난 초봄에 건너편 용천사를 안은 '모악산' 쪽을 둘러 보았기에 이번 코스를 합치면 불갑산 일주가 되는 셈이다. 불갑사야 워낙 유명하니 찾아가는 길은 생략하고….

불갑사 앞 오른편으로 난 산책길로 접어든다. 커다란 나무들이 호위하고 오른쪽에 시내를 끼어서 기분이 상쾌하다. 조금 걸으니 저수지가 보인다. 역시나 물이 바닥에만 있다. '참식나무 자생지'와 '꽃무릇 군락지' 안내판이 서 있다. 불갑산 자락은 전국 최대의 상사화 군락지란다. 산책길이 넓고 평탄한 데다가 이른 아침이라 산행인도 없어서 모처럼 둘이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흥얼거리며 걷기에 아주 좋다.

15분 정도 걸으니 '동백골'이다. 예전에 동백나무숲으로 꽉 차 있었다는데 지금은 다른 나무들과 드문드문 어우러진 동백나무들. 해는 떠 있는데도 산길은 해저물녘처럼 어둡기만 하다. 나뭇잎 사이로 가느다란 빛들만 비칠 뿐이다. 눈이 많은 지역이긴 하지만 따뜻한 기후 덕에 울창한 수림을 형성한 덕이다. 해 한 번 제대로 못보고 정상에 이르게 되니 한 여름에 와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동백골에서 잘 정리된 적당한 경사로를 따라 25분쯤 걸으니 '해불암'이다. 대웅전만 옛 건물인 듯하고 좌우로 요사채 둘이 새로 들어 서 있다. 대웅전의 부처님은 여인같다. 특히 입과 볼이. 마당에 서 내려다보니 맑은 날이라 시원스레 서해가 펼쳐진다. 이야아, 멋진데?

마당을 벗어나니 다시 울창한 숲길, 정책적 지원을 해서 그런지 등산로가 너무 잘 닦여 있어 '이 정도까지 할 필요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급경사 길이긴 하지만, 폭이 넓은 데다 정상까지 밧줄도 매어 놓고, 나무와 흙으로 계단까지 잘 정리해 품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해불암에서 15분 정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오르니 갑자기 '짜잔' 하고 드러나는 정상(515.9m). 여러 산을 다녀 보았지만, 내내 울창한 숲길만 걷다가 '저기쯤일까' 라는 단 한 번의 예고도 없이 바로 정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산은 처음인 거 같다. 올라오면서 바위를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정상은 거대한 암봉이다.


동서남북이 환하게 열린다. 가슴이 '화악' 트인다. 이렇게 멀리까지 조망되다니……. 먼지, 안개가 적고 맑은 날인지라 칠산바다가 바로 앞자락에 보이고, 무등산도 손내밀면 달려올 듯 보인다. 무등산 옆 추월산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행정구역으로 보면 연실봉을 경계로 불갑면과 묘량면, 그리고 함평군 해보면이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있다.
사면이 트인 암봉은 나무가 없어 몸 하나 가릴 그늘도 없지만, 오늘은 바람이 너무 좋아 맘껏 행복해진다. 무등산 쪽이 보이는 내륙보다 바다 쪽이 오히려 누우런 먼지층을 이룬 띠가 보여, 그것도 황사의 여파인가 싶다. 조금 껄적지근 아쉽다.

바람을 품으며 간식까지 즐겁게 먹은 뒤, 하산길로 들어선다. 짧은 하산길도 많지만 이번엔 가장 긴 코스를 택한다. 해불암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니 오른쪽 능선으로 '장군봉' 가는 푯말이 서 있다. '노루목'에 이동통신용 안테나가 산허리를 자르고 있다. 노루목 못 미쳐 '안전한 길'과 '위험한 길' 안내판이 나선다.

그 친절함에 빙그레 웃고는 '위험한 길'을 택한다. 한쪽이 절벽이고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고공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위험한 길' 쪽을 권하고 싶다. 오른 편 절벽 아래로 펼쳐지는 경치를 구경하면서 바람을 맞는 것도 좋고, 쇠사다리와 암릉을 어렵게 통과하는 재미도 다른 맛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한 쪽에 밧줄을 설치해 두었다.

쇠사다리 4개를 지나 노루목을 지나면 '헬기장'이 나오고, 소나무 숲과 전망 좋은 봉우리들이 나오는데, '장군봉-투구봉-법성봉-노적봉'순이다. 등산로 정비도 잘된 산이지만 안내판이 이렇게 잘 된 산도 드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역시나 울창한 숲속을 흥얼거리며 봉우리들을 통과하면 아늑한 의자와 탁자까지 마련된 '덫고개'가 보인다. 연실봉에서 55분 거리다.
흘린 땀을 고르고 경사로 내려오느라 뻐근한 발목도 주물러 본다. 새소리가 정겹고 상큼하다. 봉우리를 통과하는 사이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덫고개에선 단체 등산객까지 만난다. 그만큼 사랑받고 있음이리라.

10분여 더 걸으니 불갑사 뒤쪽이다. 절마당은 들어서지 않고 그냥 나선다. 더 호젓한 왼편 길을 택해 보지만 이미 나들이객들이 많다. 주차장 근처에 이르니,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는 마음은 같아선지 주차장은 비어 있고, 불갑사 가까운 길 양편으로 차가 틈없이 즐비하다. 많은 차와 사람들을 보며 유명세를 그대로 드러내는 곳임을 실감한다.

모든 것이 충족된 넉넉하고 고운 산행, 돌아오는 기분도 벙글벙글.
길과 글을 사랑하는 한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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