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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현

5 · 18과 민주운동의 기관차

박관현

5.18 직전까지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을 주도하다가 비상계염 전국 확대 조치와 동시에 보안사에서 재야 인사를 체포하자 여수로 도치하였으나 제포되어 모진 고문과 단책투쟁끝에 사망했다.

늦여름에 피어나는 원색의 나팔꽃은 순정하면서도 처연한 마음이 들게 한다. 환한 낮에는 노래하듯 구호를 외치듯 활짝 피었다가 어두운 밤에는 불안한 미래에 떨듯, 초조한 듯 오므라든다. 나팔꽃은 한 젊은 혁명가의 삶을 떠오르게 하는 꽃이 되었다.

1980년 5월 16일 전남도청 앞 대중집회에서 박관현의 연설이 이렇게 시작되자 시민들은 안도하고 또 기대에 벅차올랐다. 대학생의 위상은 1980년에만 해도 지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시민들의 얼굴은 햇살을 만난 나팔꽃처럼 활짝 펴졌다. 그의 죽음과 관련해서 떠도는 나팔꽃씨의 음모는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마지막 투쟁에 대한 의분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박관현은 1953년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서 태어났다. 양심적인 법조인이 되어 사회와 민중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는 꿈을 품고 1978년 전남대 법대에 차석으로 입학했다. 입학한 그해 6월 27일 송기숙, 명노근, 안진오 교수 등 전남대 교수 11명이 「우리의 교육 지표」라는 성명성을 발표하고 전원 정보부에 연행된 소위 ‘교육지표 사건’이 일어났다. 학생들은 「전남대 민주학생 선언문」을 낭독하고 ‘연행교수 석방’, ‘학원사찰 중지’을 외치며 시위를 펼친다. 이 일을 겪으면서 대학의 현실과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해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약 60여일 동안 광천동 지역의 노동자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79년 4월부터는 들불야학에서 강학으로 활동하면서 주민들의 삶에 다가서 지역문제를 함께 고민하였다. 들불야학은 그의 마음에 모두가 잘사는 세상에 대한 꿈을 들불처럼 옮겨 주었다.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을 향한 진실된 마음과 헌신적인 자세는 주위 동료들에게 큰 신뢰를 심어주었다.

1980년 4월 주위 사람들의 권유에 힘입어, ‘민주학원의 새벽 기관차’라는 구호를 걸고 전남대 총학생회장에 입후보한다. 그의 유세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4월 8일 2차 유세에는 1만여 명의 학생들이 운집해 사상 초유의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후 전개한 투쟁에서도 그는 ‘사람이 기본이고 원칙이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다. 어용교수 퇴진을 요구하며 교수실에 못을 박는 행사에서는 분노를 앞세우기보다는 복도에 무릎을 꿇고 슬픈 현실을 먼저 반성했다. 5월초 단식농성 때는 늦은 밤 추위에 떠는 후배들을 위해 학생회실 커튼을 뜯어 이불로 덮어주기도 했다.

박관현을 중심으로 한 비상학생총회는 5월 8일부터 14일까지 학내에서 민족민주화 성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5월 14일에는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다. 도청 앞 분수대에는 2만 명이 넘는 시민 · 학생이 모였다. 심금을 울리는 박관현의 연설은 대중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이은 15일과 16일의 집회로 박관현은 ‘광주의 아들’로 거듭나고 있었다.

5월 17일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박관현은 주위의 강력한 권유를 저버리지 못하고 광주를 떠나게 된다. 여수와 서울 등지에서 숨어 지내면서 죽는 것보다 더 버거운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감당해내야 했다. 1982년 4월 체포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내란 중요 임무 종사’라는 죄목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박관현은 5 · 18 진상 규명과 교도소 내 처우 개선을 주장하며 몇 차례에 걸쳐 40여일 간 옥중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장기간의 단식 과정에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박관현은 1982년 10월 12일 새벽, 급성심근경색과 급성폐부종으로 피를 토하며 전남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팔꽃이 막바지에 이른 계절에 나팔꽃씨를 몰래 갈아 넣은 배식을 장기간 먹어 피를 토하며 죽었다는 소문만 나팔꽃 넝쿨처럼 무성했다. 27년이 지나고, 그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한 젊은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꽃 나팔 소리 아침이다
영원한 날을 여는 초인超人의 음표는 방울, 방울 이슬에 깃들어 있다

꽃 나팔 소리 저녁이다
마지막 날을 닫는 미륵의 돌쩌귀 소리에 놀라 한 줄 햇살은 서둘러 빗장을 건다

시간의 지도리는 바람의 강물을 타고 저 혼자도 열렸다 저 혼자도 닫혔다 소리도 없고 춤도 없는 노래, 아직 이슬에서 깨어나지 못한 음표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데……

꽃이 핀다 색도 향도 없이 소리로, 소리로 피는 꽃은 노래가 된다 소리로 피는 꽃은 마음의 귀를 타고 온몸으로 흘러 영원의 문에 닿아 부서진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데” 박관현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문구이다.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법과대학으로 오르는 길목에 박관현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정문에서 용봉탑에 이르는 길을 ‘관현로’라고 부른다. 2012년 박관현 열사 30주기를 맞아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새벽 기관차 - 박관현 평전』이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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