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소태산 박중빈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

소태산 박중빈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뚜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자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 호 : 소태산
  • 출생지 : 영촌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원불교의 교조敎祖이다. 그는 1891년 5월 5일(음력 3.27) 영광군 백수읍 길동리 영촌마을에서 부친 박성삼朴成三, 모친 유정천劉定天의 4남 1녀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의 이름은 진섭鎭燮, 청년시절에는 처화處化라 불렀다.
원불교를 창립한 이후에는 제자들이 소태산 대종사少太山大宗師라 불렀다.

7세경부터 우주 대자연의 현상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9세경부터 인생의 모든 일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를 깨우치기 위해 구도 생활을 시작하여 20년의 오랜 구도 생활 끝에 26세 되던 1916년 4월 28일(음 3.26) 이른 새벽, 동녘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고 우주와 인생의 큰 진리를 깨우치게 되었다.

그는 다른 성자와 달리 본인이 태어나 구도하고 대각한 고향에서 제자들을 얻고 이들과 함께 저축조합, 방언공사防堰工事, 혈인기도血印祈禱 등으로 교단 창립의 기초를 닦았다. 그 후 부안 변산 봉래정사蓬萊精舍에 들어가 교리와 제도를 구상한 후 1924년에 전북 인산군 북일면 신용리(현 익산시 신룡동)에 총부를 건설하고 불법연구회란 임시 명칭으로 교단을 창립하였다.
그는 스스로 깨친 진리를 ‘일원상一圓相’이라 표현하고, 삼학팔조三 學八條, 사은사요四恩四要를 교리의 근간으로 삼았다.

대종사 그는 1943년까지 익산 총부에 주재하며 제자들과 교단 창립에 노력하면서 서울, 부산, 전주, 영광, 원평, 마령 등지를 순회하며 교세 확장에 힘썼다. 교단은 일제에 의해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나 호남지방의 농민과 수탈당한 서민들을 주축으로 하여 점차 발전해 나갔다.

1943년 6월 1일 소태산 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생사진리에 관한 마지막 법문을 설파하고 53세를 일기로 총부(전북 익산시 소재)에서 열반하였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장남은 원광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박길진朴吉眞(1915~1986)이다.

이후 제자들은 원불교란 이름을 짓고 현재 익산 총부 내에 대종사 석탑, 기념관을 건립하여 소태산 대종사를 후천개벽의 주세불主世佛로 존숭하고 있다. 또한 소태산이 열반한 6월 1일을 ‘육일대재’라 하여 기념하고 있다.
현재 백수읍 길용리 일대는 소태산 박중빈의 출생지이며 그가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우친 곳으로서 원불교 성지로 추앙받아 관리되고 있다.

깨달음의 기쁨을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고 하고 후천개벽의 새 문명사회를 이끌어갈 원불교의 문을 열었다.
이후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를 개교표어로 내세우고 2차 세계대전과 일제하의 암울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최초 9인 제자들과 함께 생활 불교, 대중 불교를 표방하며 불법의 생활화, 시대화, 대중화에 힘쓰며 미래사회에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게송을 발표한 후 1943년 6월 1일 세수 53세로 열반에 들었다.

탄생-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는 1891년 5월 5일 이곳 옥녀봉 아래 영촌에서 탄생(탄생가)

발심- 7세부터 하늘의 이치를 비롯 인간생활에 의심이 걸려 구도를 시작 (옥녀봉)

기도- 11세부터 의심을 해결하고자 산신령을 만나려는 뜻에 기도(삼밭재)

스승을 찾아서 - 16세부터 6년간 스승 찾아 사방을 다님(구호동집터)

입정-22세부터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라는 한생각에 입정(선진나루)

대각-1910년 4월 28일, 대종사 26세에 모든 의심 다 깨우치는 대각 이룸(대각터,만곡일월비)

교화시작-소태산 대종사는 당시 세상을 보고[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 선포,[최초 법어]를 제자들에게 가르침(최초설법지)

교화단 조직 - 따르는 40여 명 중 9인을 창립 표준제자로 선정 최초의 단 조직

저축조합운동- 1917년 저축조합을 조직하여 금주단연, 근검절약, 공동노동, 보은미 저축, 허례페지를 실천, 공부와 사업의 기초 만듦

방언공사 - 1918년부터 1년간 바다 개펄 막아 논을 만드는 방언공사 이름(방언관리소터, 정관평, 제명바위)

법인기도-창생 위해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9인 제자의 간절한 기도로 법계에 인증받는 법인성사를 이룸(구간도실터, 9인봉)

영산원 건설-1918년 옥녀봉밑 구간도실, 1923년 돛드레미로 옮겨 영산원이라 이름하고 교단 창립기의 많은 선진들이 대종사 모시고 수도


보도자료

전체 : 0, 페이지 : 1/0
리스트 : 박중빈 게시판의 번호, 제목, 작성자, 점부파일, 조회 리스트 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일
등록된 게시물이 없습니다.